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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영화 <원 네이션(One Nation)>을 통해 본 프랑스 혁명 속 '시민'의 탄생 정리!

by 동쌤의 소셜머니 2023. 2.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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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영화 <원 네이션>에 반영된 프랑스 혁명은 어떤 사건이었을까?

영화 <원 네이션>은 2019년 3월 21일 개봉한 피에르 쉘러 감독의 프랑스 영화다. '원 네이션(One Nation)'이라는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 영화는 프랑스 혁명 이후 '시민'과 '국민'의 탄생으로 프랑스가 하나의 국민 국가로 성장하는 과정을 그린 영화다. 프랑스 혁명은 프랑스에는 물론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사건이지만, 이를 다룬 대중 매체 중에 프랑스 혁명을 제대로 다룬 영화는 많지 않다. 그마저도 프랑스 혁명을 '프랑스 부르봉 왕조의 몰락' 자체에 초점을 둔다거나, '열정어린 민중의 승리한 혁명'으로 우상화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영화 <원 네이션>의 경우, 혁명과 관계없는 제3자가 점차 프랑스 혁명이라는 거대한 물결을 마주하면서 점차 프랑스 혁명의 투사로 성장하는 과정을 보여줌으로써 일반 민중의 입장과 민중을 둘러싼 당시 혁명 정세가 어떠했는지 종합적으로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다. 국내에서는 많이 알려져 있지는 않아 네이버 기준 평점 7.83이라는 다소 아쉬운 성적을 기록했지만, 영화 <원 네이션>이 대중이 접하기 어려운 세계사 영화라는 점, 그리고 한국 사람들에게는 다소 멀리 느껴질 수 있는 주제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그렇게 낮은 평점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영화의 역사적 배경이 된 프랑스 혁명은 어떤 사건이었을까? 

프랑스 혁명은 한 순간에 갑자기 일어난 것이 아니었다. 루이 14세의 절대왕정 말기 프랑스는 국가 부채가 이미 한계에 도달해 있었다. 루이 14세의 허영심과 자만심이 만들어낸 끔찍한 괴물이 프랑스 전체를 집어삼킬 위기에 처해있었던 것이다. 베르사유 궁전까지 만들며 부르봉 왕조의 전성기를 과시했던 루이 14세는 이제 늙고 병들어 몸 한 군데 성한 곳이 없을 정도로 쇠약해져 있었다. 이런 상황에 루이 14세의 아들들도 병으로 인해 세상을 먼저 떠나게 되고, 루이 14세는 증손자 루이 15세에게 그동안의 방탕한 생활과 사치, 잦은 전쟁을 반성하며 "너는 절대 짐을 닮지 말라."라고 유언을 하며 숨을 거두게 된다. 이미 증조부가 남긴 엄청난 국가 부채와 민중의 빈곤을 떠안고 왕조를 연명하게 된 루이 15세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루이 14세가 절대 본인을 닮지 말라고 했건만, 루이 15세가 국가 부채를 탈피할 수 있는 것은 도박과 같은 전쟁 뿐이었다. 하지만 이마저도 본인의 뜻대로 되지 않자, 프랑스의 운명은 나날이 어두워지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왕위에 오르게 된 루이 16세는 정치적 무능 그 자체였다. 민중을 핍박하는 왕은 아니었지만, 루이 16세는 정치에 관심이 없었고 자신의 방에 틀어박혀 자물쇠를 연구하는 것이 그의 가장 큰 취미였다. 그 사이 프랑스의 국력은 더욱 더 기울어져 갔다. 절대 왕정이라고 불리던 부르봉 왕조의 힘이 바닥에 떨어지고, 귀족들이 나라를 지배하게 된 상황에서 민중은 더욱 기댈 곳이 없어졌다. 당시 프랑스에서는 국왕 아래에 3개의 신분이 존재했는데, 1신분이 성직자, 2신분이 귀족과 기사, 3신분이 평민이었다. 1, 2신분은 전체 국민의 약 3~5%, 3신분은 약 95~97%에 육박했음에도 불구하고 거의 모든 부를 1, 2신분이 독점하고 있었다. 절대 다수가 절대 소수를 위해 봉사하고 착취당하는 이러한 프랑스의 당시 상황을 '구제도의 모순(Ancient Regime)'이라고 부른다. 결국 이러한 상황에 국왕 루이 16세는 국가 부채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삼신분회를 소집하게 되는데, 이 때 소집된 3신분의 부르주아 계층은 자신의 목소리를 요구하기 위해 표결 방식을 신분별 표결이 아닌 머릿수 표결로 바꾸자고 제안한다. 하지만 이것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자신들만의 독자적인 의회인 '국민 의회'를 결성하고 이에 저항하게 된다. 이를 국왕과 귀족들이 회의장 폐쇄 조치 등으로 무력 진압하자 회의장을 박차고 나와 테니스 코트에서 "새로운 헌법이 제정되기 전까지는 절대 해산하지 않겠다."는 슬로건을 내걸며 서약을 작성하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그 유명한 '테니스 코트의 선언'이다. 이후 민중들이 사상범 수용소였던 바스티유 감옥을 습격하게 되면서 프랑스 혁명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오늘날까지 프랑스 대혁명 기념일을 바스티유 감옥 습격사건이 있었던 7월 14일로 정해 기념하는 이유도 바로 이러한 역사적 사실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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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시민'과 '국민'의 탄생은 역사적으로 어떤 의미를 지닐까?

프랑스 대혁명은 국민 의회, 입법 의회를 거쳐 로베스피에르가 이끄는 자코뱅당이 권력을 잡는 국민 공회, 총재 정부, 통령 정부 등을 거치며 다양한 변화를 거치게 된다. 그 과정에서 나타난 가장 큰 변화 중 하나가 바로 프랑스 '시민'과 '국민'의 탄생이다. 일개 프랑스 영토에서 살고 있었던 한 개인은 프랑스 대혁명이라는 물결 속에서 '나라에 대한 정체성'과 '애국 의식'을 경험하게 되고, 한 국가의 시민과 국민이라는 속성을 스스로 부여하게 된다. 이렇듯 나라에 대한, 민족에 대한 정체성을 규정하고 수립하는 일련의 과정을 거침으로써 '국민 국가'로 발전을 하게 된 것이다. 이처럼 프랑스는 프랑스 대혁명이라는 사건을 통해 국민 국가로 나아가게 되고, 이는 중세적 질서에서 벗어나 근대적 세계로 나아가는 한 계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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