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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영화 <맨 프럼 어스 1> 판타지 철학 영화 줄거리 및 총평

by 동쌤의 소셜머니 2023. 1.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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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영화 <맨 프럼 어스 1> 줄거리 및 한 줄 후기

영화 <맨 프럼 어스 1>은 2015년 8월 23일 개봉한 판타지 철학 영화다. 영화의 줄거리는 10년 간 지방 대학에서 교수로서 학생들을 가르치던 존 올드맨이 종신 교수직도 거절하고 갑자기 이사를 가려고 하면서 시작된다. 갑작스러운 그의 행동에 의심을 품고 집요하게 이유를 파헤치려는 동료 교수들이 마련한 송별회에서 갑자기 존 올드맨은 충격 선언을 한다. 그건 바로 자신이 14,000여 년 전부터 살아온 고대인이라는 것이다. 그는 동료 교수와의 이야기 속에서 자신이 10년마다 늙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채기 전에 다른 신분으로 자신을 바꿔 이주해왔고, 이 곳에서도 10년을 채웠기 때문에 떠나는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자신이 주장하는 내용에 대해 구체적인 증거자료를 통해 동료들의 놀라움과 당혹감을 더욱 크게 만들어가기 시작한다.

"당신은 1년 전 오늘 어디 있었는지 기억하나요? 인간의 기억은 유한하기 마련입니다. 1만 4천년을 산다고 해도 천재가 되지는 않아요. 많이 배운다고 해도 그 시대의 것일 뿐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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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총평

 현대로 접어들면서 의학의 기술은 급속히 발전했다. 마치 인간이 영생에 접근하려는 듯이 인간의 건강회복과 수명연장을 위한 기술은  나날이 팽창해가고 있다. 그러나 인간의 본질적으로 '인간 수명의 유한성'은 해결할 수 없는 과제로 남아있다. 그러나 한 번 생각해보라. '만약, 고대부터 지금까지 약 14,000여년을 살아온 인간이 존재한다면?'. 말도 안되는 상상이라고 생각할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영화 <맨 프럼 어스>는 이렇듯 다분히 신비주의적인 상상에 기초해 스토리를 전개해 나간다. 우리의 유한한 역사적, 인류학적 지식을 떠올려보고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가를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지며, 영화 <맨 프럼 어스>에 접근해 보도록 하자.  우선 과거로부터 14,000여년을 살아온 사람이 있다고 가정해보자. 영화속에서 이러한 가정은 영화 속 인물 '에디스'의 말 속에서 가장 먼저 엿볼 수 있다. 에디스는 주인공인 '존 올드맨'의 이삿짐에서 우연히 빈센트 반 고흐의 화풍을 담은 걸작을 발견하며, 정말 진품같다고 이야기한다. 이는 이야기를 여는 서막인 동시에 존 올드맨이 풀어갈 '14,000여년의 이야기'의 초석이 된다. 그리고 존 올드맨이 가진 이삿짐에 관심을 보이는 여러 분야의 학자친구들은 그가 진귀한 고대 예술품들을 가지고 있는 것에 대해 의아해하며 질문공세를 쏟아낸다. 그리고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존 올드맨은 본인의 입으로 영화의 주제와 전제를 언급한다. 그리고 존 올드맨과 학자들 사이의 논쟁은 비로소 시작된다. 생물학자, 종교학자, 인류학자, 역사학자 친구들 사이에서 자신이 '구석기 후기부터 존재한 인류'라고 설득력있게 주장하는 존 올드맨은 한낱 100여년의 인생도 제대로 감당하기 어려운 친구들에게 이해불가의 대상일 뿐이다. 심지어 자신이 붓다(고타마 시타르타)에게 영향을 받은 '예수(Jesus)'라고 주장하는 모습에서 학자 친구들은 경악한다. 특히 종교학자 에디스는 더욱. <맨 프럼 어스>는 그 어떤 스펙타클한 장면도 없고 공간도 1개의 공간에서 진행하는 저예산 영화이지만, 이러한 '사실화된 허구'와 '허구화 된 사실'의 논쟁 사이에서 그 어떤 블록버스터 영화보다도 색다른 흥미로움과 생각거리를 제공해 준다. 이 영화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부분은 '인간의 유한성과 한정성'이며, 영화 후반부의 종교학자 에디스와 존 올드맨의 화해 장면은 이러한 인류의 유한성을 극적으로 부각시켜준다. 자신이 평생을 바쳐 믿고 연구하고 살아왔던 '가치'와 '진리화 된 가설'에 대해 정면으로 논박할 수 없는, 마치 자신의 삶이 부정당하는 것 같아 인정하기 싫어하는 '한낱 보통의 인류'와, '신의 이름을 사용하는 특별한 인류'사이의 갈등은 후자가 전자를 달래고 얼러 품어주는 방식으로 해결된다. '인간의 유한성'과 '신적인 무한성'의 사이에서 해결방법은 사실상 그 방법밖에는 없기 때문이다. 한편 영화는 어쩌면 포스트모더니즘(Post Modernism)의 형식을 취하고 있는 듯 하다. '진리란 존재하지 않으며, 우리가 믿고 의지하는 것은 어쩌면 공허한 것'이라는 메시지를 영화 내내 지속적으로 상기시켜 준다. 이러한 영화를 통해 우리는 '비판적 사고와 성찰' 단계에 도달할 수 있으며, 비판적 사고를 통한 인간의 '유한성'을 바로 인식할 때 타인을 이해할 수 있고 오히려 유한성의 범위를 더 넓힐 수 있는지도 모른다. 다만 영화적 설정처럼 거의 모든 존재가 한낱 보통의 인류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모든 존재는 '한낱 특별한 인류'라고 생각한다. 평범하지만 개개인들은 정말 특별한, 그런 사람들이 모여 살아가는 사회. 신에 대한 담론들이 무수히 많은 것은 신이 창조한 인류가 그만큼 특별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언제나 특별한 것에 대해서는 굳이 개입하거나 말하지 않아도 그 가치가 빛나는 법이니까.
 이러한 생각을 토대로 우리는 다시 한 번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과연 내가 이세상 최고처럼 행동하는 게 바람직한 일일까.' 누구나 존중받고 싶어하지만 그 존중의 느낌은 존중의 느낌으로 그쳐야 한다. 인간의 유한성을 바로 인식할 때 우리는 '겸손'을 배울 수 있고, 겸손한 사람들이 모여 살아갈 때 우리는 서로의 자유와 평화를 인정하며 공유할 수 있다. 우리 개개인은 분명 존귀하고 특별한 존재이지만, 또 그렇기에 겸손해져야한다. 거대한 우주앞에, 우리는 별의 숨결을 먹고 살아가는 하나의 존재일 뿐이다. 그 안에서 우리는 겸손의 미덕과 '제한'의 본질을 알고, 각자의 의미를 찾아 살아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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